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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국제질서 비교
    국제관계학 2022. 12. 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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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비교하고, 왜 전자는 또 다른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인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급부상하여 국제질서를 재편한 국가가 있다. 미국이다. 미국은 먼로독트린으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지역 이외의 지역은 침범하지 않겠다는 외교방침으로 유럽제국의 동향 등 국제정세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 초반 서부 전선에서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참호전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며 전쟁이 장기화되고, 동부 전선에서 독일이 러시아를 공격하며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러시아 국내에서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다. 러시아는 소비에트 정권 수립 후 독일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며 전쟁을 이탈하게 된다. 반면 해상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에 퍼부은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중립국 선박인 미국을 공격하게 되고 이는 미국이 먼로독트린 방침을 깨고 참전하게 되는 발단이 된다.

     

    19191차 대전 후 연합국이 전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개최된 파리강화회의에서 베르사유체제가 성립된다. 미국 윌슨 대통령은 14개조 평화원칙, 즉 식민 지배를 받는 나라와 민족의 주권은 식민지 주민의 이익과 손해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민족자결주의, 자유무역, 공개조약, 민주주의 원칙을 반영한다. 또한 독일문제에 대해 국경분할, 라인강 유역 비무장화, 군비축소, 연합국의 독일 식민지 위임통치와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내용으로 베르사유 조약을 맺게 된다. 이렇게 연합국과 패전국 독일 사이에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전쟁의 책임을 독일에게 물게 된다. 이 독일 문제에 관해 프랑스는 독일에게 혹독한 처벌을 원했지만 미국은 민족자결주의로, 영국은 프랑스 견제 국가가 필요하다는 밸런싱 유지를 이유로 독일의 혹독한 처벌을 반대하였다. 그리고 국제 평화와 안전 확보를 위해 1920년 국제연맹을 창설하였지만, 미국 등 강대국이 불참하고 분쟁을 막을 군사적 수단이 없어 효과는 미비하였다.

     

    이후 독일은 배상금 지불을 이행하지 않고, 프랑스와 벨기에군의 루르를 점령한다. 또한 독일은 무제한 화폐를 발행하여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하며 엄청난 경제난을 겪게 된다. 한편 1차 대전 중 미국은 무기를 만들어 연합국에 수출하고 전후에 유럽에 전후 복구 자금을 빌려주며 미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 경제 호황으로 기업이 생산을 늘리자 소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재고가 증가하고 1929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주가가 폭락하며 대공황이 발생한다. 기업과 은행은 파산하고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미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던 유럽 등 전 세계로 경제 위기가 확산된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확산은 세계 경제 블록화, 독일 수출 시장 봉쇄, 실업자 급증 및 경제 파탄을 야기하였으며 베르사유 체제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결국 대공황의 혼란과 사회적 불안을 틈타 전체주의 세력이 출현하고 경제 기반이 약했던 독일은 히틀러 나치가 일당 독재를 수립하여 나치독일을 탄생시킨다. 히틀러는 게르만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인종 차별 정책을 추진하고 점진적 확장을 시도하면서 라인란트 재무장 사건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미진한 대응을 확인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병합,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여 개인의 모든 활동은 민족, 국가와 같은 전체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이념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를 통제한다. 이 후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2차 세계대전 초기엔 독일이 우세하였으나 1941년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참전하고 미국, 영국, 소련의 전시 협력으로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연합국 승리,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 승리,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프랑스 해방, 19455월 영미 연합군과 소련의 공격으로 독일 항복 및 1945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 항복을 끝으로 2차 대전에 종결된다. 2차 세계대전 결과 1차 세계대전과 달리 대규모 인명과 재산 피해, 도시 파괴, 나치의 유대인 학살 및 생체실험 등으로 반인륜적 범죄가 발생하였다. 전후 처리를 위해 전쟁 전부터 국제사회 논의를 시작하고 1941년 대서양 헌장으로 평화 수립 원칙을 마련하고 UN 창설을 결정한다. 이후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에서 전후 처리 문제를 결정하고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된다. 2차 세계대전 결과 유럽 열강의 영향력은 대폭 축소되었고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되었으며 미국과 소련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양국의 냉전 체제가 탄생한다.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국제질서의 차이점은 위와 같이 복잡하고 결정적인 차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다시 일어났나는 점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크고 작은 전쟁은 있었지만 세계대전 규모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양차 대전 이후 국제질서 비교를 통해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점은 미국이 급부상 했다는 점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무대의 일원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과 함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일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패권국인 미국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개인, 국가, 세계 3가지 관점으로 분류하여 알아 볼 수 있다. 먼저 개인 방면으로 보면 첫째, 히틀러의 왜곡된 생각과 사상이다.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일자리 부족과 치솟는 물가 상승으로 독일 국민들은 절망에 빠지게 되고 이 때 히틀러가 나타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이후 자신의 민족만이 우월하다고 강조하는 독일 노동당인 나치에 들어가고 본인이 가진 특출한 재능으로 사람들 앞에 연설을 하고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에게 홀리게 된다. 히틀러는 결국 총통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으며 권력을 차지한 히틀러는 독재 정치를 시작으로 유태인을 박해하며 약 600만명을 학살한다. 히틀러의 망상과 경제 위기에 히틀러의 망상에 홀린 독일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발생시킨다.

     

    개인 방면으로 두 번째,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의 오판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히틀러는 나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체코를 달라는 끈질긴 요구를 하였고, 체임벌린은 전 세계의 평화 유지라는 명목으로 체코와 상의도 없이 체코를 덥석 내주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덕분에 체코는 적군을 막기 위해 쌓아둔 요새를 한순간에 잃게 되고 얼마가지 못해 나머지 영토도 점령당한다. 이는 전쟁 준비의 서막을 알리게 된다.

     

    다음은 국가 방면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파탄으로 살기 어려워졌고 나치즘, 잠복된 인종주의, 범게르만주의는 다음 전쟁을 야기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세계 방면으로 보면 첫째 미국의 역할 부재이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피해를 입지 않았고 전후에는 유럽에 전후 복구 자금을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는 등 당시 전쟁 이후 경제력으로 가장 우수한 국가였다. 미국은 우수한 경제력으로 유럽을 안정시킬 수 있었고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은 다시 발발된다.

     

    둘째, Buckpassing이다. 라인란트 재무장 사건 등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아직 전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오판하고 독일의 타국 침탈을 방관하였다. 소련 역시 공산주의자보다 히틀러가 낫다고 생각하며 방관하였다.

     

    셋째, Bandwagoning이다. 체코를 분할시켜 독일이 가져가는 것으로 동의한 점, 영국과 프랑스는 오히려 히틀러가 있어 소련을 견제할 수 있다고 오판한 점 등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발발에는 위와 같이 세 가지 방면으로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얼마 가지 못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패권국인 미국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1945년 미국은 패권국임을 자각하고 전후복구에 매진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바랐던 미국의 중재자 역할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적극 나서면서 전 세계에 전쟁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국제기구 생성을 통해 국제관계 규칙을 형성하는 등 평화 기여를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전쟁한 국가들의 빠른 전후복구를 통해 다시 수출시장을 확보하고 무역이익을 얻으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국제 사회의 패권국인 미국의 적극적인 관여를 통해 오늘날까지 양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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